현진이가 준 빵
현진이가 불쑥 '왕만쥬' 빵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교무실 청소를 하러왔다가 주머니 속에 잘 간직했던 빵을 나에게 흔쾌히 준 것이다.
그에게는 빵은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을 텐데.........
김현진!
작년에 그 애를 처음 보았다.
그 애가 5학년일 때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모아 공부를 도와 주는 5학년 교실로 확인차 올라갔을 때였다. 4명의 아이들이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하고 다른 아이보다 덩치가 두 배는 되는 됨직한 순진하게 생긴 남학생 하나가 나를 보고 신기한 듯 물었다.
"나? 응. 교감선생님이지...."
"아항! 유승룡 교감선생님이구나!" 그 중에 덩치가 가장 작은 애가 말했다. 바로 현진이다.
"너는 유승룡교감선생님을 알고 있구나! 유 교감선생님은 솔밭초등학교로 9월에 전근 가셨지... 난, 새로온 정광규 교감선생님이야"
"교감이 뭐에요?" 또 다른 눈이 유난히 크고 동그란 애가 물었다.
"야! 교감이 뭔지도 몰라?" 현진이는 큰소리를 쳤지만 이내 다음 말은 잇지 못했다.
솔직히 난 그때 한숨만 나왔다. 5학년 2학기에 5학년들이 주고받는 대화로는 영 아니다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아이들을 기초기본 학습이 확실히 다져질 아이로 교육해야 한다니.....
난 가져간 사탕 몇 개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당부를 하고 내려왔다.
6학년에 올라와서 이 아이들을 더 자주 만났다.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 제로화를 부르짖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요청에 부응하고자 6학년 선생님들과 대학생 멘토 등을 총 동원하여 이 아이들에게 보충학습의 기회를 더 주었다.
교대생이 하는 대학생 멘토 수업에 현진이가 들어 있었다. 교무실 옆에 있는 작은 공간의 회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하기에 나는 자주 그 곳에 들러 덩치가 제일 작은 현진이와 다른 아이의 덩치 두배가 되는 재석이 그리고 탈북자 자녀인 지아에게 빵과 과자 등을 자주 나누어 주곤하였다. 그러면 이 아이들은 사탕이나 과자를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입 안에 과자를 더 넣을 수 없을 때까지 쑤셔 넣곤 하였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자존감이 떨어질까봐 좀 더 친근하게 대하며 결코 공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날인가. 현진이가 단단히 화가 났다. 아마도 집에 가고 싶은데 보충 학습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불만이었는가 보다.
현진이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공부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현진아 공부는 평생 동안 해야 하는 거란다. 공부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것을 나중에는 알게 될껄? 교감샘도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는걸...." 나는 애써 현진이를 위로한다고 말했다.
"노숙자들은 공부 안 하잖아요? 그냥 놀고 싶어요.... 집에 갈래요."
"현진이는 어떻게 현진이 자신을 노숙자와 비교해? 나중에 행복하게 살려면 공부를 해야 해."
"싫어요. 나는 노숙자가 부러워요." 나중에는 노숙자를 찬양하는 듯한 말들을 했으며, 책상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난 더 이상 말하는 것이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중에 현진이는 교감선생님하고 더 많은 대화를 해야겠는 걸?" 하고 조용히 나왔다.
요즘 현진이가 교무실 청소를 아주 신나서 한다.
어제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현진이는 기초학력 미달에 한 과목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은근히 칭찬도 할겸 장난을 치고 싶었다. 눈을 감고 입을 벌리라고 하였다.
사탕과 과자를 더 먹기 위해 다람쥐 도토리 입에 물 듯 과자를 쑤셔 넣듯하던 그 입이다.
현진이의 입에 홍삼 캔디를 넣어 주면서
"먹고 나서 나에게 어떤 맛인지 말해 주겠니?" 했더니
캔디를 입에 넣고 한참 있다가 인삼 맛이나는데요?"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전에 산삼을 먹은 적이 있다고 자랑을 했다.
"너무 잔인하다! 살아있는 삼을 먹었어? 죽은 삼을 먹어야지....."
현진이는 내가 말하는 농담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청소가 다 끝난 시간 현진이가 내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불쑥 무언가를 내게 내밀었다. 빵이었다. 얼마나 손으로 주물렀는지 빵은 비닐 봉지 속에서 이미 풀어져 있었다.
"교감 선생님은 안 먹어도 배부르단다. 너나 먹어라."
나는 그 애가 얼마나 빵과 사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 안다.
여러 차례 현진이의 마음은 교감선생님이 다 아니 그냥 네가 먹어라 했건만 현진이는 끝내 내게 빵을 남긴 채 사라졌다.
사라져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조금은 더 당당하고 커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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