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된 무질서와 무시된 법 질서
합의된 무질서와 무시된 법 질서
충청북도교육정보원장 정광규
얼마 전 청주시새마을회에서 청주시 일원에서 교통법규 준수 문화 정착을 위한 ‘모범 시민이 간다! 새마을 양심 운전자 찾기’ 행사를 했다. 양심운전자 120여명에게 청원생명쌀 선물했다고 하는데 그 상품이 소모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궁금하다. 1996년 이경규가 간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인적없는 곳에 설치된 횡단보도 정지선에 정확히 정지하는 운전자를 발견하는데 많은 시간이 지났던 것으로 기억난다. 프로그램 내용 중에는 일본에 가서 양심 운전자를 찾는 내용도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지키지 않는 자를 찾는 것이 더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나고 교통 법규를 잘 지켰다고 난리를 떠는 이경규 일행을 보고 일본 사람들이 당연한 것을 가지고 이렇게 칭찬하고 난리인가하고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몇 해 전 호주 여행의 기회가 있어 1주일 정도 호주에 머문 적이 있다. 저녁에 자유 시간이 주어져서 가까운 공원으로 가벼운 산책을 가는 중이었다. 일본 여행에서도 상당히 당황스러웠던 것처럼 호주에서도 우리와 달리 자동차 좌측통행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특별히 오른쪽을 먼저 살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더욱 조심해야 했다.
신호등 앞에서 나름 나도 이제는 선진 문화국에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지 않은가? 그러니 문화 국민이 외국에서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자부심으로 교통 신호를 철저히 지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런 나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호주 사람들! 그들은 신호등에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빨간등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횡단보드를 건너는 것이 아닌가? 빨간등에 횡단보도를 유유히 건너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호주는 내가 알고 있는 문화 선진국이 아니구나하고 생각하며 나는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어 좀 짜증스러운 생각으로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보행자들을 보니 거의 대부분이 신호를 지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이 사실이 매우 낯설게만 느껴져서 나만이라도 신호를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녹색등이 들어오길 기다리며 남들은 다 건너간 신호등 밑에서 나만 덩그란이 남아 기다렸다. 오히려 신호를 철저하게 지키려는 나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을 때의 민망함이란!
그런데 몇 번 더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나는 그들이 신호등을 그냥 무시하고 건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철저하게 좌우를 살펴 교통에 방해되지 않은 상태에서만 길을 건너는 것이었다.
아! 이것이 합의된 무질서이구나! 그들이 합의된 무질서라 생각하여 건넌지는 내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찌보면 참 합리적인 무질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등은 단지 우선 순위를 표시하는 장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횡단보도에서 빨간등 표시는 지금은 차량이 우선, 녹색등 표시는 지금은 보행자 우선이라는 합의만 되어 있으면 굳이 차량이 지나지 않는데도 보행자가 없는데도 무작정 3,4분을 우두커니 서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과 태국 여행에서 놀란 것 중의 하나는 도시에 오토바이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었다. 넓은 도로 좁은 도로 할 것 없이 오토바이들로 넘쳐났다. 여행 안내자는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안되는 도로에서는 그냥 급히 방향만 바꾸지 않고 걸어가면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알아서 잘 피해가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넓은 도로에서 신호가 바뀔 때마다 정지선에 도열하다시피 질서 있게 서는 오토바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들의 교통 법규 준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그것이 아름다워 보였던 이유는 아마도 신호를 어겨 출발하는 오토바이를 내 눈으로는 한 대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어떠한가? 일부 영업용 오토바이와 렉커차 운전자들은 신호등은 처음부터 아예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아니 오히려 신호등이 있어 교통 법규를 지키는 사람들을 꼭 붙들어 놓고 자신들만 남들보다 더 빨리 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도와 차도 횡단보도 교차로를 종횡무진하고 일부러 큰 소리를 나게 만든 소음기의 굉음은 그들에게서 무시된 법질서의 극치를 볼 수 있다.
교통 법규의 준수는 법 이전에 공중 도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도 있다. 일본처럼 너무 차갑게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여 절대 넘어서서는 안되는 엄격한 법 질서도 좋지만 도덕과 법이 융통성 있게 자율적으로 행해지는 합의된 무질서가 더 따뜻한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